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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 존재의 완결성과 장소의 회복 - 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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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3-12-26 17:50 조회 1,670hit 댓글 0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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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의 완결성과 장소의 회복
 
 
윤진섭(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1876-1957)<프로메테우스>(ca, 1911)란 작품은 서양의 현대조각사에서 조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자율성을 획득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을 잘 보여준다. 로댕에서 부르델을 거쳐 마이욜에 이르는 인체조각의 변천은 브랑쿠시에 이르러 마침내 인체의 묘사로부터 결별을 하게되며, 종국에는 인체라는 유기체와 완전히 독립된 하나의 오브제를 낳기에 이른다. 현대조각이 지닌 이러한 자기 충족성(self-sufficiency)은 인체의 해부학적인 토대에 대한 참조들(references)로부터 해방되면서 비로소 가능해지기 시작했다(Rosanlind E Krauss, Passages in Modern Sculpture, The MIT Press, p.93). 그러나 상기한 브랑쿠시의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아직도 인체의 유기체적 속성이 가시지 않고 있다. 전체적으로 상하 좌우의 대칭적 구조를 지니고 있는 이 작품은 마치 채 식지 않은 체온처럼 넓은 등판과 엉덩이를 연상시키는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브랑쿠시의 조각은 1916년과 1925년에 제작된 <젊은 남자의 토르소>에 이르러 더욱 추상화된다. 세 개의 단순한 원통 형태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그러나 그것이 몸통과 두 다리의 변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함으로써 아직도 인체의 유기체적 특징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브랑쿠시의 <무한주(Endless Column, 1937)>는 동일한 패턴의 반복에 의한 수직형태의 모뉴먼트로서 조각이 건축으로부터 독립하여 완전한 자율성을 갖게 되었으며, 야외조각의 가능성을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임동락의 조각은 브랑쿠시 이후 미니멀리즘에 이르는 현대조각의 전통에 기대고 있다. 이는 그의 조각이 서양 현대조각의 전통에 직접적으로 연루돼 있다기보다는 현대조각의 보편적 조형어법을 차용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스텐레스 스틸로 이루어진 그의 근작들은 깔끔한 외관과 대칭적 구조, 동일한 패턴의 반복을 요체로 삼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양괴(Point-Mass, 1996)>처럼 인체의 특정 부위를 연상시키는 것도 있으나, 대체로 조각의 자율적 속성이 강조된 기하학적 추상조각이 주류를 이룬다.
 
 임동락의 근작들은 원기둥과 삼각기둥의 형태를 원소로 하여 이루어진다. 말하자면 이 두 원소들이 그의 조각을 형성하는 인자들인 셈이다. 그의 조각작품은 이 두 원소들의 복잡한 변형이며, 그의 조각이 지닌 심미적 특질의 근원은 이들로부터 나온다. 원기둥과 삼각 혹은 사각의 기둥은 현대의 미니멀리즘 조각에서 그 자체 하나의 오브제로서 자율적 속성을 지닌다. 일체의 이미지 연상을 배제시킨 미니멀리즘 작품은 완벽한 자기충족성으로 말미암아 현대조각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데, 임동락의 작품 역시 어떠한 이미지 연상도 배제함으로써 현대조각의 미학적 정수(精髓)를 보여준다.
 
 스텐레스 스틸의 매끄러운 표면 광택은 임동락의 작품을 생기 있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동일한 패턴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그의 작품이 기하학적 내지 대칭적 구조를 띠는 것과 긴밀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원기둥을 비스듬히 자를 때 생기는 면이 강조된 그의 작품은 이러한 면들이 이루어내는 반복적 구조에 미적 특질의 대부분을 기대고 있다. 그것은 부단히 자기증식을 꾀해 가는 세포의 분열처럼, 반복적 패턴의 연결에 의해 생명이 부여된다. <-원형질(Point-Protoplasm, 스텐레스 스틸, 300x300x750cm, 2000)>은 이러한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대표적인 작품이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이 작품은 여러 개의 원기둥이 결합된 동일한 패턴의 단위 다섯 개가 중첩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원기둥을 약 45도 각도로 자른 단면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배치되어 한 단위는 대략 마름모꼴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완벽한 좌우대칭의 구조를 지니고 있는 이 작품은 재료에서 오는 밝고 경쾌한 느낌과 함께 균제적 특질이 심미적 완성도를 강화시키고 있다. 거대한 기둥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브랑쿠시의 <무한주>처럼 개념적으로는 하늘을 향해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동일한 구조적 패턴을 지닌 이 작품은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상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각적 변화는 무엇보다 작품의 구조에서 온다. 막힘과 풀림, 닫침과 열림, 오목함과 볼록함(凹凸)의 구조는 패턴의 반복에 의해 야기된다. 원기둥의 절단면과 몸통 부분이 만들어내는 이 오묘한 관계는 자연의 운행과 순환법칙에 대한 유비이다. 원시인들이 자연을 관찰하여 기하학적 패턴을 창출한 것처럼, 그의 작품에는 자연의 순환 고리를 이루는 질서가 합리적으로 구현돼 있다. 미술사학자 알로와즈 리글은 원시미술에서 보이는 기하학적 양식의 근원을 대칭과 리듬의 법칙에서 찾고 있는데, 이러한 기하학적 양식은 다름 아닌 사물을 균형의 관점에서 보려는 의지의 소산인 것이다. 사물을 합리적인 관점에서 보고자 하는 임동락의 노력은 기하학적 패턴에 근거한 완벽한 형태미를 창조하게 된다. 그의 근작들은 하나의 퍼즐처럼 시각적으로는 매우 복잡해 보이나 실상 원리는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의 양괴(mass)가 동일한 구조의 다른 양괴와 결합하여 보다 큰 양괴를 만들어내는 임동락의 작품은 동일한 패턴의 반복적 구조에 의한 대칭(symmetry)의 형태를 요체로 하고 있다.
 
 그러나 임동락의 작품이 모두 반복적 구조에 의한 대칭의 세계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비행(Point-Fly, stainless steel, 205x205x135cm, 1999)>메비우스의 띠를 연상시키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날렵한 형태의 원반을 지그시 비틀어놓은 듯한 독특한 구조는 관람자의 시선을 유도하는 흡인력을 지니고 있다. 스텐레스 스틸이 지닌 광택효과를 십분 활용하고 있는 이 작품은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관람자 자신의 변형된 모습뿐만 아니라 주변의 환경이 작품에 비친 것을 볼 수 있다. 작품은 주변 환경을 자체 내에 담아냄으로써 작품이 환경의 일부가 됨은 물론, 환경이 작품에 반영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관람자는 작품 주변을 걸으면서 전 방향에서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작품이 지닌 이러한 구조는 수동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여타의 작품과는 달리 관람자의 시선을 흡인하는 적극적 역할을 유도해 낸다. 이 작품은 또한 감상자의 눈높이에 알맞은 크기를 지님으로써 형태적 안정감과 함께 심리적 편안함을 가져다 준다. 높은 크기의 기둥 작품이 관람자로 하여금 고개를 쳐들고 올려다보게 함으로써 숭고미를 느끼게 하는 것과는 달리, 이러한 유형의 작품은 관람자에게 친근한 느낌을 부여하게 된다.
 
 이번에 발표한 임동락의 대형 조각들은 대부분 야외에 설치될 것을 전제로 제작된 것이다. 따라서 그의 근작들은 대부분 규모가 크며, 주변 환경과의 친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의 작품이 지닌 이러한 기념비적 성격은 영국의 스톤헨지나 맨힐과 같은 태양거석문화를 연상시키는 그의 모뉴먼트 작품 <-태양(Point-Sun, stainless steel, black granite, 1300x1300x7000cm, 1999)>에 잘 나타나 있다. 높이가 무려 7미터나 되는 거대한 검정색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기둥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근작 <-원형질>의 원형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거대한 크기의 기둥은 '우주의 축(axis mundi)'으로서의 상징적 기능을 지니고 있다. 현대조각이 주거의 장소인 건축물로부터 독립됐다는 사실은 원시인들이 집을 세계의 모형(imago mundi)으로 간주했던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모뉴먼트는 집으로부터 분리됨으로써 그 자체 자율적인 생명력과 내적 논리를 좇아 발전해 왔다. 따라서 현대인은 엘리아데가 냉철하게 지적한 것처럼, 더 이상 하늘을 기둥에 의해 떠받쳐지는 거대한 천막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현대의 모뉴먼트 조각에서 나타나는 기둥은 잃어버린 신화, 즉 기둥이 지닌 신성의 회복에 대한 갈구가 아닌가.
 
 제의(祭儀)나 종교로부터 분리된 이래, 예술은 세속화의 과정을 걸어왔다. 예술이 삶과 급격히 가까워지면서 세속화의 강도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세속화를 견제하는 예술이 존재한다고 하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위안을 가져다 준다. 임동락의 조각은 건축물로부터 의식적으로 분리됨으로써 공공장소에서 그 자체의 존재성이 더욱 부각된다. 특히 그의 거대한 기둥 작품은 예술의 순수성을 견지하면서 한편으로는 잃어버린 신성의 회복을 기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더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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